"임신해도, 아이낳아도…" 내쫓기는 이주여성들

[부산CBS 김혜경 기자]

결혼 이민자 이혼건수 급증, 대안 마련 시급

최근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이주여성들이 한국국적도 취득하지 못한 채 내쫓기는 등 결혼이민자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베트남 여성 A(25)씨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난데없이 남편으로부터 이혼소장을 받았다.

결혼 초기 다정하게 대해주던 남편이 돌연 태도를 바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A씨를 구박하기 시작하더니, 뱃속에 있는 3개월 된 아이까지 지우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윽박질렀다.

A씨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울면서 사정했지만, 결국 남편 가족들에게 내쫓기다시피 쉼터로 들어왔고, 현재 협의이혼을 신청한 상태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땅을 밟았지만, 이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한국국적까지 얻지 못한채 빈손으로 고국땅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A씨는 "남편 가족들이 낙태하면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값을 챙겨주겠다고 일방적으로 내쫓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싶은데, 혼자서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고, 한국국적을 어떻게 얻어야 할 지도 몰라 막막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인 B씨(34)는 4살 난 아들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여성 쉼터에서 살고 있다.

결혼 초기부터 남편이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더니 B씨가 집안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일방적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B씨는 법원이 양육권을 인정해주지 않을 경우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이처럼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결혼 이민자에 대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는 11만 6천535건으로 지난 2003년 16만 6천617건에 비해 30.1% 줄었지만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 건수는 2003년 2천12건에서 지난해 1만 1천255건으로 5.5배 가까이 늘었다.

이같은 국제결혼 이혼율 증가세는 그만큼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여성들이 이혼 이후 한국국적을 얻지 못하고 거의 내쫓기다시피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국적법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2년이 지나야 귀화 신청 자격이 주어지고, 이후 배우자가 동의해야 1~2년 뒤 국적을 완전히 취득할 수 있다.

이때문에 일부 남편들은 제도를 악용해 '배우자 동의'를 하지 않아, 한국국적 취득을 빌미로 이주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이주여성 보호를 위해 이혼한 이주여성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을 경우 귀화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한국법과 언어를 잘 모르는 여성이 홀로 귀책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례고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부산이주여성다문화가족센터 어울림 이인경 소장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주여성의 경우도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주여성은 양육권을 갖기 어려워 아이들과 생이별한 채 한국을 떠나는 여성도 많다"면서 "이들이 남편의 폭력과 구박으로 억울하게 이혼을 당해도 한국땅에 체류할 수 있도록 체류자격이나 국적 취득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hkkim@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