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일본에서는 한 필리핀 불법체류자 가족의 사연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사건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92년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 사라(사진 오른쪽)는 이듬해 입국한 필리핀인 아란 크루스 칼데론과 결혼했다. 95년에는 딸 노리코(왼쪽)가 태어났다. 이들은 20년 가까이 산업폐기물 처리업체 등에서 일하며 별일 없이 지냈다. 그 사이 노리코는 일본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진학했다. 도쿄 북부 사이타마현에 살면서 외국인 등록도 하고 주민세도 냈다.

그러던 중 2006년 사라가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10개월간 입국관리국에 수용됐다. 일가족 해외 퇴거를 조건으로 가석방된 사라는 시민단체와 함께 당국에 재류특별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허가는 일본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는 딸에게만 떨어졌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칼데론 부부가 성실히 일했고 지역사회에도 뿌리를 내렸다"며 당국에 재류특별허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서명에는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노리코는 "일본은 나의 모국이다. 가족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당국은 칼데론 부부가 불법 입국했다는 점을 들어 부부에게는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모리 에이스케 당시 법무상은 "법은 지켜야 한다"면서도 부부에게 딸의 면회를 위한 특별 입국을 허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강제 퇴거당한 외국인의 재입국은 5년간 금지돼 있지만 이들 부부에 대해 1년 뒤 딸을 만날 수 있도록 허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 4월 출국해 필리핀에 머물며 딸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류특별허가는 불법체류 등으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아도 법무상이 본인과 가족의 상황, 인도적 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특별히 체재를 허가하는 제도다. 2000년 불법체류자라도 생활기반이 일본 내에 있고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허가를 내주는 등 기준을 완화했다. 법무성 통계에 따르면 2004~2008년 불법입국·체류자 4만9343명이 일본 정부로부터 재류특별허가를 받았다.

< 도쿄 | 조홍민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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