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거예요”

일부 이주여성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운 말 “이년아”

한국 사람들의 ‘무시’ 사람을 숨 막히게 해요

▲ 솔직토크에 참여한 김춘분씨, 장서진씨, 전민하씨(왼쪽부터)

국내 체류 외국인 130만 명 시대. 이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은 지도 이제 10여 년을 훌쩍 넘었다. 이주 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특히 조선족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생활 9년차 김춘분(34), 6년차 장서진(32), 13년차 전민하(38)씨. 이주 여성 1세대로서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어낸 일들과 생각을 들어봤다.

- 고향은 내몽골이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남편과 만나 9년 전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 이후 남편이 중의학을 공부해서 중국과 카자흐스탄에서 살다 한국에 정착한 지는 5년 됐어요. 이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고 있어요.

- 제 고향은 헤이룽장(黑龍江 흑룡강)성이고 지린(吉林 길림)에서 자랐어요. 중국에서 한국의 넥타이 만드는 회사에서 자제관리 일을 하다가 중매로 남편을 만나 2005년 한국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어요. 이제 4살 딸아이의 엄마예요.

- 열두 살 된 남자아이의 엄마예요.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남편과 점원으로 만나 연애 끝에 1998년 결혼을 하며 한국에 왔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1년도 되지 않아 건강했던 남편이 스트레스 등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한국의 전문대 미용학과를 졸업하고 12년 정도 피부관리 일을 하다가,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 저도 한국에 와서 네일, 헤어, 회계, 전산재무회계 등 많이 배웠는데 정작 관련된 일은 못하고 있어요. 모 전자회사 대리점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외국인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는데 중국 학력은 인정을 안 해줘요. 그래서 결국 지금은 주부들을 위한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어요.

- 저도 같이 학교에 다녀요. 하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애국가를 배워 와서 부르다가 “엄마 노래 중간 부분 잊어버렸는데 불러줘” 그러는 거예요. 애국가를 알아야 부르죠. 그때 나는 국적은 갖고 있어도 진정한 국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주 여성들은 보통 한국 사람들이 당연히 아는 상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를 다니며 찬찬히 하나하나 배우고 있어요.

“아이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필요해요”

- 아이가 중학교 가면 이런 게 더 심해져요. 부모는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요.

-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아이가 배우는 내용을 잘 몰라 아예 못 봐주고 있어요. 이게 제일 힘들어요. 학원도 보내봤는데 너무 비싸고…. 혼자 벌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 어렵고 아이를 챙겨주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 초기 결혼 이민자들은 지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한국어를 배운 이후에 엄마로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엄마가 커야 아이도 크는 건데요.

- 얼마 전 우리 구 센터에 가서 결혼 5년차 이상이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담당자가 “참석이나 하고 말하세요” 하는 거예요. 사실 대부분 초기 적응 단계 프로그램이라 저희는 참석할 게 없어요. 지자체에서 저 정도의 수준은 센터에 오지 말고 직업 찾아 보래요. 아직도 한국에 살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어디에도 도움 받을 데가 없어요.

- 결혼이민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등록금 지원은 많아요. 그런데 실제로 아직까지 대학 진학을 하는 다문화 가족 아이들은 많지 않아요. 전 얼마 전 신청 대상자가 너무 없어서 그 장학금을 신청해서 받았어요. 요즘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해서, 집에 가서도 아이와 영어 배운 걸로 같이 공부하는데, 좋아요.

남녀차별·인권침해는 여전

- 시아버지가 장손 타령이 심해요. 저는 아직도 한국의 장손문화 자체가 이해 안 돼요. 중국에는 그런 거 없이 공평해요.

- 제가 아는 동생도 딸이 셋 있는데 아들 낳을 때까지 낳아야 된다고 시부모님이 그러셨대요.

- 저와 남편은 딸을 갖고 싶었는데, 시아버지께서 “계집애는 돈만 써”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막상 크니까 예뻐하시기는 하는데 유산은 다 손자에게만 줄 거라고 그러시는 걸 듣고 이해가 안 갔어요.

- 아직도 남편들이 이주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남편이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사람들이 꽤 있고요.

- 우리 앞집 이주 여성분에게 중국어 강사 자리가 있어서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그 남편이 “여자가 좋은 걸 보고 나면 도망간다. 그런 좋은 일자리 말고 공장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14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살았는데 왜 아내를 못 믿는지 모르겠어요.

- 피부관리 숍에서 만난 이주 여성들 중에는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잠자리에서 성기가 헐 정도로 못살게 군대요.

- 한 친구는 한족인데,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더니 시집 식구들이랑 남편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게 했대요.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이 ‘이년아’였어요. 시어머니가 요강을 머리에 붓고 얼굴을 할퀴었어요. 아직도 힘들게 사는 이주 여성들 많아요.

- 한국의 이주여성정책은 남편을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요. 비자를 연장하려면 남편이 신원보증을 해야 해요.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애정을 키워가야 하는데 “내가 없으면 넌 한국에 못 있는다”라는 일부 한국 남자들이 있어요. 여자들이 맞고 살면서도 반항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살 수 없고 친정이 어려워서예요.

- 이주 여성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나는 한국에서 살아야 해” 하면서 이를 악물어요.

한국 사람들의 ‘무시’ 여전

-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산이 있냐고 물어봤어요.(웃음) 아는 분이 중국에 자주 갔다 오는데, 중국의 황산을 보다가 한라산 보면 흙무지 같다고 말할 정도인데….

- 중국에 온 한국 사람들은 큰 강을 보고 바다 같다고 놀라기도 하죠.

- 한국에 오기 전에는 홍콩과 같이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항에서 다리 건널 때까지는 휘황찬란하고 신기했는데 점점 시어머니랑 남편이 어두운 산길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차가 시커먼 밤길을 달려 산 속으로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마중 나온 시어머니가 날 팔아버리는 건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 ‘무시’라는 게 사람을 숨 막히게 해요. 시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사회도 그렇고 취직도 그렇고. 사람이 한두 번은 괜찮아도 몇 년 무시당하니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이제 어느 정도 지나니 눈치만 늘었어요.

- 오래 살다 보니 어떤 때는 무시를 하지 않는데도 자격지심이 앞설 때도 있더라고요. 하나하나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무시라고는 생각을 안 해요.

- 저도 처음에 힘들었는데 점점 괜찮아지는 거예요. 적응했기 때문에 행동도, 관점도 달라지나 봐요. 모르고 왔을 때는 부정적으로 다 이상했는데.

- 큰아이가 어릴 때 아이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외가가 중국인 사실을 말하게 된 거예요.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건데, 순식간에 놀림거리가 돼서 한동안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둘째아이에게는 엄마가 중국 사람인 걸 모르게 했어요. 좀 크면 자기가 상황을 봐서 조심할 수 있지만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하다가 놀림거리가 될까봐 말을 못 하겠어요.

- 그래도 자식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는데…. 저는 “엄마는 중국에서 태어났어.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이야”라고 자꾸 이야기해줘요.

-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숨겼어요. 조선족이니까 겉모습도 비슷하고, 한국어도 잘하면 잘 구별하지 못해요.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다 나오긴 하지만요.

- 차별 때문에 자기 아내가 중국에서 시집 온 거 밝히지 않는 남자들도 많아요. “저 사람 국제결혼 했어” 그러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갈린대요.

이주 여성의 내부격차·경쟁 심화

- 이주 여성들 안에서도 잘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어요.

- 국가별로 많이 배우고 안 배운 사람들 차이도 있어요.

- 요즘 이주 여성들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좋은 직업을 차지해요. 우리는 처음에 들어와서 고생하며 겨우겨우 여기까지 배웠는데 봉사활동만 하다가 좋은 자리는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다 뺏겼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 정보화 사회에서 이주 여성 사이에도 누가 먼저 정보를 가지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달라요. 모두 맘고생 하며 서로 도와주며 화합하는 듯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경쟁이 이뤄지고 있어요.

- 이주 여성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받는 사람만 받는 상황이에요. 특히 이주 여성 중에도 혼자 사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제 친구는 이혼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남편이 생활비 20만원 주는 걸로 먹고살아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 한국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은 힘들잖아요. 외국에서 와서 애 낳고 혼자 키운다는 건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조선족 사회의 붕괴 심각

- 이주 초기에는 중국 사람들을 만나면 친정 식구 만난 것처럼 반가웠어요.

- 지금은 중국 사람이 한국에 너무 많아요. 나올 사람들은 이제 다 나왔다고 보면 돼요. 조선족 사회에서는 “치마 입은 사람은 다 나왔다”는 말도 있어요.

- 조선족 자치구가 거의 무너질 정도예요. 내몽골에 있던 조선족 학교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거기 교장선생님, 동네 이장님도 한국에 돈 벌러 나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한족이 조선족 마을 이장을 하고 있어요.

- 헤이룽장성 조선족 학교도 꽤 컸는데 이제 창고가 됐어요.

- 한국 생활이 힘들어도 중국보다 돈 벌기는 나으니 다들 한국에 오는 거죠.

- 이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가 쇼크 상태에 빠지셨어요. 엄마 혼자 중국에 계시면 돌아가실 것 같아서 남편과 함께 모시자고 했는데 비자가 연장이 안 된대요. 본국에 있는 자식은 데려올 수 있어도 부모는 안 된대요.

- 가족결합권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친정 식구들이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국제결혼, 추천하고 싶어요?

- (일동) “아니요.”

-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거예요. 같은 나라 남자 만나도 힘든데, 국제결혼은 정말 여러 가지로 힘들어요.